번역가 재희의 멕시코시티 여행기 · 수빈에게

호수 위의 여덟 날

Ocho días sobre el lago

호수 위의 여덟 날12345678차례지도수첩
Mapa

지도

핀 숫자는 그곳을 찾는 날이에요. 누르면 그날의 루트로 넘어가요. 점선 타원이 테노치티틀란 섬이 있던 대략의 자리예요.

멕시코시티 지도. 숫자는 그곳을 찾는 날. 옛 테노치티틀란 섬 (대략) 차풀테펙 숲 UNAM Reforma Insurgentes Calz. de Tlalpan 센트로 확대 → 1 로마 1 콘데사 3 소치밀코 3 UNAM 도서관 4 인류학박물관 4 차풀테펙 성 5 코요아칸 5 카사 아술 7 바라간 자택 7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7 세 문화 광장 6 ↗ 테오티우아칸 약 45km 5 km N ↑

센트로 이스토리코 확대

센트로 이스토리코 확대 지도 알라메다 공원 Madero 보행자 거리 Reforma 2 소칼로 (2·8일) 2 템플로 마요르 2 아술레호스 2 리베라 벽화관 2 예술궁전 4 카페 라 아바나 7 가리발디 8 국립궁전 8 산 일데폰소 500 m

날짜는 1월 2일 토요일부터 9일 토요일까지로 잡은 예시예요. 월요일 휴관과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에 맞춰 순서를 짰어요. 도로와 공원 윤곽은 위치를 가늠하기 위한 약도예요.

Día1

1월 2일 토요일 · 로마 · 콘데사

물웅덩이에 비친 비행기

Respirar

이날 가방에 넣은 영화

「로마」

알폰소 쿠아론 · 2018

「로마」를 세 번 봤다. 한 번은 한국어 자막으로, 한 번은 수업 준비하느라 스페인어 자막으로, 한 번은 자막 없이. 세 번 다 첫 장면의 비행기가 제일 오래 남았다. 도착하는 날에는 그 비행기 쪽에 앉아 보고 싶었다.

루트

  1. 1

    오후

    공항

    앱 택시로 30분 남짓
  2. 2
    콜로니아 로마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늦은 오후

    알바로 오브레곤 대로

    숙소에 짐을 두고 걸어서Metro Insurgentes (1호선) · 알바로 오브레곤 대로부터 걷기지도 ↗
  3. 3

     

    테페히 거리

    로마 수르, 걸어서 15분 남짓
  4. 4
    콘데사와 멕시코 공원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해 질 녘

    멕시코 공원 타원

    걸어서 15분 남짓Metro Chilpancingo (9호선) · 암스테르담 거리 한 바퀴지도 ↗
콜로니아 로마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투손에서 차 없이 산 지 칠 년째라, 나는 어디를 가든 남의 차나 남의 바퀴에 실려 간다. 이번에도 피닉스 공항까지는 셔틀, 거기서부터는 비행기였다. 멕시코시티에 가까워지자 창밖이 끝없는 지붕으로 바뀌었고, 비행기는 어느 동네 위를 아주 낮게 지났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알았다. 로마 지구였다.

「로마」의 첫 장면은 마당 타일 바닥이다. 비눗물이 밀려왔다 빠지고, 고인 물에 비친 하늘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간다. 그 비행기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는 영화가 말해 주지 않는다. 그날은 내가 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공항 택시 기사는 출발하자마자 물었다. "¿De dónde eres, chinita?"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그는 "¡Corea!"라고 두 번 외치고, 딸이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독학한다고 자랑했다. chinita라는 말은 그날 이후로도 여러 번 들었다. 작고 다정하게 부르는 말인데, 동시에 동아시아 사람을 한 단어로 뭉뚱그리는 말이기도 하다. 번역하다 이 단어를 만나면 나는 아마 각주를 달 것이다. 그날 택시 안에서는 각주 없이 그냥 웃었다. 그의 딸이 언젠가 이 말에 대해 아빠와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쪽에 걸고 싶었다.

1 숙소 계단 두 층을 오르는데 숨이 찼다. 투손과는 시차가 한 시간뿐인데 고도는 1,500미터나 차이가 난다. 짐을 두고 알바로 오브레곤 대로로 나갔다. 가운데로 긴 산책로가 지나가고, 화려한 옛 저택들 사이사이에 매끈한 새 건물이 끼어 있다. 쿠아론이 찍은 1970년의 로마는 아직 1985년 지진을 모른다. 내가 걸은 로마는 그 지진에 무너졌다가 다시 세운 동네였다. 새 건물이 끼어 있는 자리마다 무언가가 무너졌던 것이다.

2 남쪽 테페히 거리는 쿠아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거리다. 집을 찾아 사진을 찍는 대신 벤치에 앉아 귀를 열었다. 녹음된 남자 목소리가 확성기로 오아하카식 타말을 판다고 외치며 자전거와 함께 지나갔다. 유튜브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영화 속 도시도 화면보다 소리가 많았는데, 그 소리 중 몇 개는 아직 같은 목소리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3 콘데사로 내려가 멕시코 공원을 감싼 암스테르담 거리를 한 바퀴 걸었다. 길이 타원으로 빙 도는 건 이 자리가 옛 경마장이었기 때문이다. 경마장은 사라졌는데 트랙은 길로 남았다. 걷다 보니 이 도시 전체가 그런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것의 윤곽을 따라 길이 나 있다. 호수도 그렇게 사라졌다.

저녁에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고 기다리는데 주인이 "ahorita"라고 했다. 교과서대로라면 '지금 곧'이다. 나는 이십 분을 기다렸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ahorita를 '지금'이라고 가르쳐 온 걸 조금 반성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기차 기적 같은 소리가 길게 울렸다. 군고구마를 싣고 다니는 카모테 수레의 증기 호루라기였다. 「로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비행기가 다시 지나간다. 나도 고개를 한 번 들고, 잤다.

알아둘 것숙소는 로마나 콘데사에 잡으면 사흘 치 저녁이 걸어서 해결돼요.

Día2

1월 3일 일요일 · 센트로 이스토리코

궁전에 들어간 노래

¿Quién entra al palacio?

이날 가방에 넣은 노래

「Querida」

Juan Gabriel · 1984

내 학생 절반은 할머니가 후안 가브리엘을 듣던 집에서 자랐다. 1990년 그가 예술궁전 무대에 섰을 때 도시는 누가 그 궁전에 들어갈 자격이 있느냐를 두고 싸웠다. 한국 사람이 멕시코계 학생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나는, 그 질문을 남의 일로 들을 수 없었다.

루트

  1. 1
    소칼로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9시

    소칼로 · 대성당

    Metro Zócalo/Tenochtitlan (2호선)지도 ↗
  2. 2
    템플로 마요르
    사진 Juan Carlos Fonseca Mat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9시 반

    템플로 마요르

    바로 옆Metro Zócalo/Tenochtitlan (2호선) · 월요일 휴관 · 일요일 붐빔지도 ↗
  3. 3
    카사 데 로스 아술레호스
    사진 Diego Delso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점심

    카사 데 로스 아술레호스

    마데로 거리 따라 10분Metro Bellas Artes (2·8호선) · 마데로 보행자 거리 끝지도 ↗
  4. 4
    Museo Mural Diego Rivera

    오후

    리베라 벽화 박물관

    알라메다 공원 건너 10분Metro Hidalgo (2·3호선) · 화~일 10:00~18:00 · 일요일 무료지도 ↗
  5. 5
    예술궁전
    사진 José Luiz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해 질 녘

    예술궁전 맞은편 위층

    공원 건너 5분Metro Bellas Artes (2·8호선)지도 ↗
소칼로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학기마다 첫 수업에 출석을 부르면 몇몇 학생이 내 발음을 고쳐 준다. 자기 이름을 할머니가 부르던 대로 불러 달라는 것이다. 그 학생들은 스페인어를 집에서 들으며 자랐지만 읽고 쓰는 법은 배운 적이 없고, 나는 스페인어를 책으로 배웠지만 그 할머니들의 부엌에는 가 본 적이 없다. 누가 누구에게 이 언어를 가르치는 건지 가끔 헷갈린다. 지난 학기에 한 학생이 과제로 「Querida」의 가사를 분석해 왔다. 할머니가 설거지할 때 늘 부르던 노래라고 했다.

1990년 5월, 그 노래의 가수 후안 가브리엘이 예술궁전에서 나흘 밤 공연을 하기로 하자 한 평론가는 고급 예술의 전당이 투계장이 되겠다고 썼다. 연대기 작가 카를로스 몬시바이스는 그를 옹호하며, 반대하는 목소리 상당수가 실은 동성애 혐오에서 나온다고 짚었다. 공연은 열렸다. 그날의 녹음은 지금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실황 중 하나다. 나는 그 질문을 들고 일요일의 센트로로 갔다. 누가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가.

1 아침 아홉 시의 소칼로는 생각보다 비어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국기 하나가 바람을 받아 크게 부풀었다. 국립궁전은 목테수마의 궁전 자리에, 대성당은 허문 신전의 돌로 지었다. 이긴 쪽이 진 쪽의 집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셈이다. 그런데 호수 바닥은 누구 편도 아니었다. 대성당 안 중앙 통로에 길게 매달린 추를 한참 봤다. 추 끝이 바닥의 표시와 어긋나 있다. 이 성당이 고르지 않게 가라앉아 온 흔적이다.

2 성당 바로 옆, 땅이 한 층 꺼진 자리에 템플로 마요르가 있다. 1978년 이 신전을 다시 꺼낸 건 고고학자가 아니라 전기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었다. 그들의 삽 끝에 달의 여신 코욜사우키를 새긴 커다란 돌판이 걸렸다. 일요일이라 멕시코 사람들은 무료로 들어왔고, 유모차를 민 가족들이 유적 위 통로에 줄을 섰다. 앞에 선 아이가 엄마에게 저 계단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고, 엄마는 "nuestros abuelos", 우리 조상들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abuelos는 할아버지들이기도 하다. 내 학생들의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3 마데로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걸었다. 거리 끝 무렵 바깥벽 전체가 푸른 타일로 덮인 집이 나온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아버지에게 '너는 타일 집 하나 못 지을 놈'이라는 말을 들은 아들이 보란 듯 집을 통째로 타일로 덮었다고 한다. 자격을 증명하는 방법치고는 정말 화려하다. 안의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계단참의 오로스코 벽화를 올려다봤다.

4 알라메다 공원 서쪽 끝의 작은 박물관에는 벽화 하나만 걸려 있다. 리베라의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1985년 지진에 호텔이 무너지기 전에 벽째 떼어 옮겨 온 그림이다. 정복자, 대통령, 귀부인, 혁명가, 그리고 공원에서 쫓겨나는 원주민 가족까지 150명쯤이 같은 공원을 걷는다. 한가운데 해골 귀부인 카트리나가 있다. 판화가 포사다가 유럽 귀부인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비꼬려고 그린 해골인데, 리베라는 그 해골을 공원 정중앙에 세우고 어린 디에고의 손을 잡게 했다. 비웃음의 대상이 그림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바로 그 공원 옆에서 그 그림을 봤다.

5 해 질 녘에는 예술궁전 맞은편 건물 위층에 자리를 잡고 이어폰으로 1990년 실황을 들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객석이 먼저 따라 부른다. 오페라 극장의 관객이 대중가요의 첫 소절을 가수보다 먼저 부르는 소리. 그 소리에 오늘 본 것들이 다 겹쳤다. 신전 위의 성당, 인부의 삽, 타일로 덮은 집, 공원 한가운데의 해골. 누가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가. 적어도 그날 밤의 대답은 분명했다. 노래를 아는 사람 모두였다.

알아둘 것템플로 마요르는 9시에 열고 월요일에 쉬어요. 일요일은 붐비니 열자마자 들어가세요. 오늘 동선은 모두 걸어서 이어져요.

Día3

1월 4일 월요일 · 소치밀코 · UNAM

표류하는 월요일

A la deriva

이날 가방에 넣은 영화

「Güeros」

알론소 루이스팔라시오스 · 2014

박물관이 모두 쉬는 월요일이었다. 학교가 멈춘 사이 목적 없이 도시를 떠도는 청춘들의 영화가 그날에 딱 맞았다. 「Güeros」는 작년 봄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과 같이 본 영화이기도 하다.

루트

  1. 1

    8시

    타스케냐

    지하철 2호선 남쪽 끝
  2. 2
    소치밀코 운하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9시 반

    소치밀코 선착장

    경전철 종점Metro Tasqueña (2호선) → 경전철 Xochimilco 종점 · 배는 시간 단위로 빌림지도 ↗
  3. 3
    Biblioteca Central

    오후

    UNAM 중앙도서관

    택시로 30분 남짓Metro Copilco (3호선) · 외벽은 언제든 볼 수 있음지도 ↗
  4. 4

    해 질 녘

    코필코

    캠퍼스에서 걸어서
소치밀코 운하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Güeros」를 학생들과 봤을 때, 한 학생이 이 영화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좋다고 했다. 1999년, 국립자치대학이 파업으로 멈춘 사이 할 일 없는 형제와 친구가 한때 밥 딜런을 울렸다는 전설의 가수를 찾아 도시를 헤맨다. 가수를 찾는 건 핑계에 가깝고, 흑백 화면은 내내 떠돈다. 그 학생 말이 맞았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동안 도시가 다 지나간다.

월요일은 이 도시의 국립 박물관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날이다. 그날만큼은 나도 갈 곳이 닫힌 사람이었다. 그래서 떠돌기로 했다. 물 위에서.

1 지하철 2호선을 끝까지 타고 내려가 타스케냐에서 경전철로 갈아탔다. 창밖으로 건물이 낮아지고, 옥상의 빨래가 늘어나고, 어느 순간 물 냄새가 났다.

2 혼자 트라히네라 한 척을 빌리기엔 값이 부담스러워 선착장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푸에블라에서 왔다는 가족이 같이 타자고 했다. 할머니, 딸 둘, 손주 셋. 사공이 긴 장대로 물 바닥을 밀자 배가 미끄러졌다. 옆으로 작은 배가 붙어 구운 옥수수를 팔았고, 할머니는 내 몫까지 샀다. 그리고 결혼은 했느냐고 물었다. 안 했다고 하자 "¡Ay, todavía hay tiempo!" 아직 시간 있다며 내 팔을 두드렸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들어 본 적 있는 걱정이었는데, 여기서는 이상하게 덜 따가웠다.

사람들은 이 물길 사이의 땅을 '떠다니는 정원'이라고 부르지만 치남파는 떠 있지 않다. 아스테카 사람들이 호수 바닥의 진흙을 쌓아 만든 밭이고, 가장자리에 심은 버드나무 뿌리가 그 밭을 바닥에 붙박아 둔다.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뿌리가 있다. 배 위에서 그 문장을 수첩에 적었다. 번역할 일은 없겠지만 갖고 싶은 문장이었다.

이 물에는 아홀로틀이 산다. 평생 아가미 달린 어린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되는 도롱뇽이다. 나는 스페인어 안에서 아홀로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십 년을 공부하고 가르쳤는데도 여기서는 여전히 아가미를 단 학습자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홀로틀은 다 자라지 않은 채로도 오래 산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는 생물이라, 쿠에만코 쪽에는 이 생물을 지키는 치남파 농부들이 생태 투어를 연다.

3 오후에는 영화가 시작된 캠퍼스로 갔다. 중앙도서관의 창 없는 네 벽은 후안 오고르만이 멕시코 곳곳에서 모은 색 돌로 붙인 모자이크다. 한 벽은 아스테카, 한 벽은 식민지, 한 벽은 근대 과학. 한 나라가 대학 건물 하나에 자기 역사를 통째로 입혀 놓았다. 그 대학이 1999년에는 열 달 가까이 멈춰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학생들이 지나가는 걸 봤다. 투손의 내 강의실이 잠깐 그리웠다.

4 해가 질 무렵 캠퍼스 옆 코필코 동네로 걸어 나갔다. 영화 속 형제가 살던 아파트가 이 동네다. 그날 내가 한 일은 남의 가족 배에 얹혀 타고, 벽을 보고, 걸은 것뿐이다. 영화 속 그들도 끝내 가수의 사인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둘 다 떠돈 날의 끝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돌아왔다.

알아둘 것통합 교통카드 한 장으로 지하철·경전철·메트로부스를 다 타요. 배는 시간 단위로 빌리니 타기 전에 값을 확인하세요.

Día4

1월 5일 화요일 · 차풀테펙 · 후아레스

공식 역사와 카페의 시인들

Realismo visceral

이날 가방에 넣은 책

『야만스러운 탐정들』

로베르토 볼라뇨 ·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이 여행의 처음 이유가 이 소설이었다. 한국어 번역으로 먼저 읽고, 몇 년 뒤 원서로 다시 읽었다. 소설 속 시인들은 공식 문단을 우습게 알고 카페에서 산다. 그래서 하루를 가장 공식적인 역사에서 시작해 그들의 카페에서 끝내기로 했다.

루트

  1. 1
    국립인류학박물관
    사진 kornemuz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9시

    국립인류학박물관

    Metro Auditorio (7호선) · 화~일 9:00~18:00 · 외국인 210페소(2026)지도 ↗
  2. 2
    차풀테펙 성
    사진 Own work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오후

    차풀테펙 성

    숲을 가로질러 20분, 언덕길Metro Chapultepec (1호선) · 월요일 휴관지도 ↗
  3. 3
    카페 라 아바나
    사진 Farisor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저녁

    카페 라 아바나

    택시로 15분 남짓Metro Juárez (3호선) · 모렐로스와 부카렐리 거리 모퉁이지도 ↗
국립인류학박물관
사진 kornemuz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처음 읽은 건 한국어 번역본이었다. 몇 년 뒤 원서를 읽다가 realismo visceral이 '내장사실주의'로 옮겨진 걸 다시 생각했다. visceral은 '본능적인', '속에서 우러나는'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번역자는 그 단어의 날것, 몸속의 그 물컹한 느낌을 살렸다. 나라면 그렇게 용감하게 옮겼을까. 그 질문이 나를 이 도시까지 데려온 이유 중 하나다.

소설은 일기로 시작한다. 1975년 11월 2일, 열일곱 살 법대생 가르시아 마데로가 내장사실주의라는 시인 무리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는다. 이 무리는 작품보다 태도로 존재한다. 옥타비오 파스로 대표되는 공식 문단을 우습게 알고, 카페에서 시를 외우고, 서점에서 책을 훔친다. 그날 나는 그 반대편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국가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공식적으로 내놓은 답에서.

1 국립인류학박물관 안뜰에 들어서자 기둥 하나가 거대한 지붕을 혼자 받치고 있었고, 지붕 가장자리에서 물이 비처럼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걸 '우산'이라고 부른다. 아스테카 전시실 정면에 '태양의 돌'이 있다. 지름 3.6미터쯤 되는 현무암 원판인데, 1790년 소칼로를 정비하다 땅속에서 나왔다. 그제 아침 걸었던 그 광장 밑이다. 이 박물관은 1층에서 고대를 보여 주고, 2층에서 오늘의 원주민 공동체를 보여 준다. 대부분의 사람이 1층에서 지쳐 돌아간다. 나도 그럴 뻔했다. 2층에서 마야어와 나와틀어로 쓰인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이 박물관이 하려는 말이 끝났다.

박물관 밖 광장에서 볼라도레스를 봤다. 다섯 남자가 높은 장대 꼭대기에 올라가, 넷이 몸에 줄을 감고 거꾸로 매달린 채 천천히 원을 그리며 내려왔다. 꼭대기에 남은 한 사람은 피리를 불었다. 내려오는 내내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2 숲을 가로질러 언덕 위 차풀테펙 성에 올랐다. 프랑스가 데려와 앉힌 오스트리아 출신 황제 막시밀리안이 3년 남짓 살다 처형된 곳이다. 테라스에서 보면 레포르마 대로가 도심으로 곧게 뻗어 있다. 황제가 성에서 궁전까지 마차로 다니려고 낸 길이다. 박물관이 공화국의 공식 역사라면 이 성은 실패한 제국의 공식 역사였다.

3 저녁에는 카페 라 아바나에 갔다. 볼라뇨가 시인들의 아지트 '카페 키토'를 그릴 때 모델로 삼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카페의 커피 냄새와 접시 부딪치는 소리, 신문을 펼친 노인들. 나는 원서와 한국어판을 둘 다 펴 놓고 첫 장을 번갈아 읽었다. 같은 일기가 두 언어로 나란히 시작했다. 누가 보면 이상한 사람이었겠지만, 내장사실주의자라면 그 정도는 이해해 줬을 것이다. 그날이 마침 11월이 아니라 1월이라 조금 아쉬웠다.

알아둘 것인류학박물관은 화~일 9~18시, 외국인 210페소(2026). 아스테카실과 2층 민족지 전시실은 꼭 보세요.

Día5

1월 6일 수요일 · 코요아칸

빵 속의 인형, 닫힌 욕실

Lo escondido

이날 가방에 넣은 영화

「프리다」

줄리 테이머 · 2002

영화 「프리다」는 그녀의 삶을 색과 음악의 축제로 그린다. 그런데 그 파란 집에는 오십 년 동안 잠가 둔 방이 있었다. 빵 속에 숨긴 인형을 찾는 동방박사의 날에, 숨긴 것들이 나온 그 집에 갔다.

루트

  1. 1

    아침

    동네 빵집

    로스카 하나 사기
  2. 2
    코요아칸 센테나리오 정원
    사진 Jbribeiro1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10시

    센테나리오 정원

    지하철 3호선이나 택시Metro Coyoacán (3호선)지도 ↗
  3. 3
    프리다 칼로 박물관 (카사 아술)
    사진 작가는 원본 페이지 참고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11시 예약

    카사 아술

    골목길 10분수요일 11:00~18:00 · 온라인 예매만 · 일반 320페소 · 아나우아칼리 포함지도 ↗
  4. 4

    오후

    아나우아칼리

    택시로 15분, 같은 표로 입장
  5. 5

    밤

    숙소

    로스카 자르기
코요아칸 센테나리오 정원
사진 Jbribeiro1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1월 6일 아침, 숙소 근처 빵집 앞에 줄이 길었다. 디아 데 레예스, 동방박사의 날이다. 사람들은 고리 모양의 커다란 빵 로스카를 상자째 들고 나왔다. 말린 과일 조각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빵 속 어딘가에는 아기 예수를 뜻하는 작은 인형이 숨어 있고, 저녁에 잘라 봐야 누구 조각에 들었는지 안다. 숙소 주인 마르타가 저녁에 같이 자르자며 한 상자를 사 왔다.

1 코요아칸은 나와틀어로 '코요테가 있는 곳'이다. 센테나리오 정원의 분수에는 정말로 코요테 두 마리가 서 있었다. 시장에서 토스타다로 이른 점심을 먹고 골목을 따라 파란 집까지 걸었다.

2 카사 아술의 코발트색 벽 안으로 들어서면 정원이 먼저 나온다. 노란 부엌의 벽에는 냄비와 토기가 빼곡했고, 작업실에는 프리다가 앉아 그리던 휠체어와 이젤이 창을 향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이 집에서 태어나 이 집에서 죽었다. 영화 「프리다」는 이 집을 노래와 사랑과 색으로 채운다. 틀린 그림은 아니다. 다만 이 집은 오랫동안 아무도 열지 않은 방을 품고 있었다.

1954년 프리다가 세상을 떠난 뒤, 리베라와 후원자 돌로레스 올메도의 뜻으로 욕실과 방 몇 개가 잠겼다. 다시 열기 시작한 건 2004년이다. 그 안에서 옷 300여 점, 사진 6천여 장, 의료용 코르셋과 등 보조기, 그리고 빨간 가죽 부츠를 신긴 의족이 나왔다. 부츠에는 작은 방울과 중국 용 무늬가 달려 있었다. 그 옷들로 꾸린 전시의 제목은 Las apariencias engañan이었다. 겉모습은 속인다. 나는 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방법을 한참 궁리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는 너무 착하고, '겉모습에 속지 마라'는 너무 훈계 같다. 프리다는 속이려고 그 치마를 입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 치마는 코르셋 위에 입은, 자기가 고른 얼굴이었다.

3 같은 표로 리베라가 지은 아나우아칼리에 들어갔다. 검은 화산석을 쌓아 피라미드처럼 지은 건물에, 그가 평생 모은 고대 조각들이 어두운 방마다 들어차 있다. 프리다의 집이 색으로 감췄다면, 리베라의 집은 돌로 감췄다.

4 밤에 마르타와 그녀의 두 아들과 로스카를 잘랐다. 내 조각에서 플라스틱 아기 인형이 나왔다. 마르타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제 2월 2일 칸델라리아 날에 모두에게 타말을 대접해야 한다고. 투손에 있을 거라 하자 그럼 거기서 만들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약속했다. 2월 2일에 학생들에게 타말을 만들어 가겠다고. 레시피는 마르타가 왓츠앱으로 보내 주기로 했다. 숨긴 것을 찾는 날, 나는 숙제를 하나 찾았다.

알아둘 것카사 아술은 현장 판매가 없어요. 수요일은 11시에 열고, 연휴 직후라 일찍 매진되니 날짜가 정해지면 바로 예매하세요.

Día6

1월 7일 목요일 · 도시 북동쪽 45km

길을 외우는 사람

Calzada de los Muertos

이날 가방에 넣은 책

『The Interior Circuit』

Francisco Goldman · 2014 · 영어

골드먼은 아내를 잃은 뒤 이 도시에서 운전을 배우며 순환도로를 외웠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투손에서도 여기서도 버스를 탄다. 길을 몸에 새기는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도시를 보는 날로 삼았다.

루트

  1. 1

    7시

    북부 버스터미널

    지하철 5호선 Autobuses del Norte
  2. 2
    테오티우아칸
    사진 Burkhard Mück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9시

    죽은 자의 길

    버스로 1시간 남짓Autobuses del Norte 터미널(5호선)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 외국인 210페소(2026)지도 ↗
  3. 3

    오전

    태양의 피라미드

    길 동쪽
  4. 4

    정오

    달의 피라미드

    길 북쪽 끝
  5. 5

    오후

    돌아오는 버스

    책 펴기
테오티우아칸
사진 Burkhard Mück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프란시스코 골드먼의 아내 아우라는 2007년 바닷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운전을 배우고, 도심을 두르는 순환도로를 외우기 시작한다. 『The Interior Circuit』는 그 길을 몸에 익히는 일로 슬픔을 견딘 기록이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투손에서 칠 년 동안 버스와 자전거와 남의 차로 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조금 부러웠다. 길을 외울 수 있다는 것, 핸들을 쥔 채 도시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1 북부 버스터미널에서 일곱 시 버스를 탔다. 한참 동안 도시가 끝나지 않았다. 언덕 꼭대기까지 덮은 집들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피라미드에 가느냐고 묻더니, 모자를 안 가져왔으면 입구에서 사라고 일러 줬다. 버스에 탄 사람에게는 버스에 탄 사람만의 도시 지도가 있다. 골드먼의 지도와는 다르지만 그것도 지도다.

2 테오티우아칸은 '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풀이되는 이름이다. 아스테카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 때 이미 수백 년 된 폐허였고, 그들은 이렇게 큰 도시는 신들이 지었다고 믿었다. 실제로 이 도시는 사람이 처음부터 자로 그은 도시다. '죽은 자의 길'은 북쪽에서 동쪽으로 15도쯤 틀어진 채 2킬로미터 넘게 곧게 뻗고, 신전과 집들이 그 축에 맞춰 놓였다. 이 도시를 외우려면 선 하나면 된다. 차 없는 사람도 걸어서 외울 수 있는 도시였다.

3 길 동쪽에 태양의 피라미드가 있다. 길가 상인이 재규어 모양 흙 호루라기를 불자 맹수가 으르렁대는 것 같은 소리가 들판을 건너왔다. 하나 샀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졸면 불 생각이다. 그늘은 거의 없었다. 1월인데도 해발 2,300미터의 햇빛은 따가웠고, 아주머니 말을 듣고 산 모자가 하루 종일 일했다.

4 길 끝 달의 피라미드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축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오백 년 전 사람들도 같은 선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도시를 몸에 새긴다는 게 꼭 핸들을 쥐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길을 여러 번 걷는 것도 그 방법이다.

5 돌아오는 버스에서 책을 폈다. 아침에 빠져나온 끝없는 도시로 다시 들어가며, 그 도시의 고속도로를 외우던 한 사람의 문장을 읽었다. 자로 그은 도시와 끝없이 번진 도시가 버스 창 하나에 겹쳤다. 가방 속 재규어 호루라기가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작게 소리를 냈다.

알아둘 것터미널에서 'Pirámides'라고 적힌 창구를 찾으세요. 물, 모자, 선크림 필수. 외국인 입장료 210페소(2026).

Día7

1월 8일 금요일 · 타쿠바야 · 북쪽

침묵에서 합창까지

Voces

이날 가방에 넣은 책

『Massacre in Mexico』

Elena Poniatowska · 원제 La noche de Tlatelolco

학기마다 이 책의 몇 쪽을 학생들과 같이 읽는다. 작가의 목소리 대신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이어 붙인 책이다. 그날 하루를 그 책처럼 짜고 싶었다. 가장 조용한 집에서 시작해서, 온 광장이 노래하는 곳에서 끝나도록.

밤에 함께노래 「El Rey」 · José Alfredo Jiménez · 1971. 가리발디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노래 중 하나. 미리 들어 두면 후렴을 따라 부를 수 있다.

루트

  1. 1
    루이스 바라간 자택
    사진 Thomas Led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오전 예약

    바라간 자택

    택시Metro Constituyentes (7호선) · 온라인 사전 예약 필수 · 12세 이상지도 ↗
  2. 2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사진 Diego Dels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점심 무렵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지하철 7호선 → B호선Metro Buenavista (B호선) · 무료지도 ↗
  3. 3
    세 문화 광장
    사진 Ralf Roletschek · GFDL 1.2 · Wikimedia Commons

    해 질 녘

    세 문화 광장

    걸어서 25분 또는 택시Metro Tlatelolco (3호선)지도 ↗
  4. 4
    가리발디 광장
    사진 José Luiz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밤

    가리발디 광장

    택시로 10분Metro Garibaldi/Lagunilla (8·B호선) · 오갈 때는 앱 택시지도 ↗
루이스 바라간 자택
사진 Thomas Led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La noche de Tlatelolco』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는 1968년 10월 2일 밤을 겪은 학생, 어머니, 군인, 행인의 말을 받아 적어 몽타주처럼 이었다. 수업에서 이 책을 읽으면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맡아 소리 내어 읽는다. 한 학생은 자기 할아버지가 그 광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 이 책은 내게 목소리의 책이다. 그날 하루를 그 책처럼 짜기로 했다. 아무 목소리도 없는 곳에서 출발해, 목소리가 가장 많은 곳에서 끝나도록.

1 바라간의 집은 거리에서 보면 무뚝뚝한 회색 벽이라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어두운 현관을 지나 두 번째 문을 열자 갑자기 밝아졌다. 꿀빛 노란 벽 너머로 분홍 벽이 있고, 마티아스 괴리츠가 만든 금빛 제단화가 남쪽 빛을 받아 그 분홍 위로 흩뿌렸다. 검은 화산석 계단이 아무 장식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바라간은 건축이 고요와 고독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다. 같은 시간에 들어온 사람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해설사조차 목소리를 낮췄다.

2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에도 소리가 없었다. 다만 침묵의 크기가 달랐다. 유리와 철로 된 거대한 상자 안에 서가들이 공중에 겹겹이 매달려 있고, 그 한가운데 고래 뼈 하나가 떠 있다. 가브리엘 오로스코가 실제 회색고래 뼈에 흑연으로 선을 그어 넣은 작품이다. 수만 권의 책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로 고래가 헤엄쳤다. 번역가에게 도서관은 원래 시끄러운 곳이다. 책마다 다른 언어로 말을 걸어 오니까. 그 고래 아래에서만큼은 모든 책이 조용했다.

3 틀라텔롤코에서부터 목소리가 시작됐다. 아스테카 시대 이곳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큰 시장이 있었다. 그 위에 16세기 성당이 섰고, 그 둘레에 1960년대 아파트 단지가 섰다. 1968년 10월 2일, 올림픽 개막 열흘 전에 이 광장에 모인 학생들에게 군이 총을 쐈다. 광장 한쪽에 이름을 새긴 기념비가 있다. 나는 거기 서서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지 않고 읽었다. 공 차는 아이들 소리와 장사꾼의 외침이 등 뒤에서 계속됐다. 책에서 읽은 목소리들이 그 소음 위로 겹쳐 들렸다.

4 밤에는 가리발디로 갔다. 은단추가 달린 차로 정장의 마리아치들이 손님을 기다렸다. 옆 테이블의 중년 부부가 한 곡을 청하는데 곡목이 「El Rey」였다. 부부가 나를 보더니 아느냐고 물었다. 후렴은 안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내 쪽으로 손을 크게 흔들며 같이 부르자고 했고, 나는 정말로 따라 불렀다. 발음은 엉망이었고 박자는 늦었다. 마리아치 한 명이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아침에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던 사람이, 밤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남의 나라 노래의 후렴을 부르고 있었다. 그날 하루가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됐다.

알아둘 것바라간 자택은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어요(12세 이상). 틀라텔롤코와 가리발디는 가깝지만 밤에는 앱 택시로 오가세요.

Día8

1월 9일 토요일 · 다시 소칼로

알아듣게 된 몇 마디

Hasta pronto

이날 가방에 넣은 노래

「Chilanga Banda」

Café Tacvba · 1996 · 하이메 로페스 작곡

멕시코시티 사람들만 알아듣는 은어로 가득한 노래. 학생들이 나를 놀리려고 틀어 줬을 때는 거의 한 단어도 못 알아들었다. 떠나는 날 택시에서 다시 들으면 무엇이 달라져 있을지 궁금했다.

루트

  1. 1
    Palacio Nacional

    오전

    국립궁전

    열려 있으면Metro Zócalo/Tenochtitlan (2호선) · 여권 지참 · 개방 여부 전날 확인지도 ↗
  2. 2
    Antiguo Colegio de San Ildefonso

     

    산 일데폰소 옛 학교

    궁전이 닫혔다면, 걸어서 5분Metro Zócalo/Tenochtitlan (2호선)에서 걸어서 5분 · 국립궁전이 닫힌 날의 대안지도 ↗
  3. 3
    소칼로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해 질 녘

    소칼로 국기 하강식

    Metro Zócalo/Tenochtitlan (2호선)지도 ↗
  4. 4

    밤

    공항

    택시로 30분 남짓
소칼로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 ProtoplasmaKid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Chilanga Banda」는 작년에 학생들이 내게 틀어 준 노래다. 칠랑고, 그러니까 멕시코시티 사람들의 은어를 'ch' 소리로 몰아넣은 노래라서 다른 지역 멕시코 사람에게도 사전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내가 한 단어도 못 알아듣는 걸 보고 즐거워했다. 선생도 모르는 스페인어가 있다는 게 그들에겐 작은 승리였을 것이다. 나는 그 승리가 꽤 마음에 들었다.

1 마지막 날은 처음 걸었던 광장으로 돌아갔다. 국립궁전이 열려 있어서 리베라의 계단 벽화를 봤다. 계단 한 벽 가득 아스테카에서 혁명까지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2층 회랑에는 아스테카 시대의 거대한 시장 풍경이 있었다. 어제 저녁 서 있던 틀라텔롤코의 그 시장이다. 그림 속에서는 그 광장이 아직 흥정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2 궁전이 닫혀 있었다면 몇 블록 북쪽의 산 일데폰소 옛 학교로 갔을 것이다. 안뜰을 둘러싼 복도 벽에 오로스코의 벽화가 이어진다. 남은 시간에는 그냥 걸었다. 첫날 숨이 찼던 계단이 이제는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다. 여드레 만에 몸이 1,500미터를 받아들였다.

3 해가 기울 무렵 소칼로에서 국기 하강식을 봤다. 군인들이 국립궁전에서 줄지어 나와 거대한 국기를 내리고 접어서 들고 들어갔다. 천이 접힐 때 독수리와 뱀과 선인장이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그 독수리가 내려앉았다는 호수가 이 광장 아래 어딘가였다. 여드레 전 비행기 창밖으로 본 끝없는 지붕들이 전부 그 호수 위에 있었다.

4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Chilanga Banda」를 틀었다. 여전히 대부분은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몇 마디가 귀에 걸렸다. 첫날 기사가 나를 부르던 말과 같은 소리로 시작하는 단어도 있었다.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보더니 그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다. 조금요, 하고 답했다. 다시 오냐고 해서 "Sí, ahorita"라고 했다. 그는 크게 웃었다. 이제 우리 둘 다 그 말이 얼마나 길 수 있는지 알았다.

알아둘 것국립궁전은 개방 방식이 자주 바뀌니 전날 확인하고 여권을 챙기세요. 국기 하강식은 일몰에 맞춰 열려요.

Cuaderno

스페인어 수첩

재희의 수첩에서 옮긴 말들이에요. 여행에서 실제로 쓸 문장과 이 도시에서만 듣는 말을 모았어요. ▶를 누르면 멕시코 스페인어 발음으로 읽어 줘요(기기에 따라 안 될 수 있어요).

가린 상태에서 카드를 누르면 뜻이 보여요.

지명 읽기

나와틀어에서 온 이름들. x는 한 글자로 세 소리를 낸다.

  • México

    [메히꼬]

    멕시코

    x를 목 깊은 ㅎ [x]로. 옛 철자의 흔적이에요.

  • Xochimilco

    [소치밀꼬]

    소치밀코 '꽃밭이 있는 곳'

    여기서는 x가 ㅅ [s]. 원래 나와틀어에서는 '쉬' [ʃ] 소리였어요.

  • Tlatelolco

    [뜰라뗄롤꼬]

    틀라텔롤코

    tl은 한 소리. 혀끝을 붙인 채 옆으로 바람을 흘리는 [tɬ]에 가까워요.

  • Chapultepec

    [차뿔떼뻭]

    차풀테펙 '메뚜기 언덕'

    chapul-(메뚜기)+tepe-(언덕)+-c(~에).

  • Coyoacán

    [꼬요아깐]

    코요아칸 '코요테가 있는 곳'

    강세는 마지막 음절.

  • Teotihuacán

    [떼오띠우아깐]

    테오티우아칸

    hua는 [wa]. h는 거의 들리지 않아요.

길에서

  • Buenos días / Buenas tardes / Buenas noches

    [부에노스 디아스 / 부에나스 따르데스 / 부에나스 노체스]

    아침 인사 / 오후 인사 / 저녁 인사

    가게에 들어갈 때 먼저 건네면 대화가 부드러워져요.

  • Con permiso. / Perdón.

    [꼰 뻬르미소 / 뻬르돈]

    지나갈게요. / 죄송해요.

  • ¿Mande?

    [만데]

    네? 뭐라고요?

    멕시코식 공손한 되묻기. ¿Qué?보다 훨씬 부드러워요.

  • ¿Dónde está el metro?

    [돈데 에스따 엘 메뜨로]

    지하철역이 어디예요?

  • ¿Me lo puede escribir?

    [메 로 뿌에데 에스끄리비르]

    적어 주실 수 있어요?

    숫자와 주소를 들을 때 유용해요.

식당과 시장

  • Dos de pastor, con todo.

    [도스 데 빠스또르, 꼰 또도]

    알 파스토르 타코 두 개, 다 넣어서요.

    con todo는 고수와 양파를 다 올려 달라는 뜻. 알 파스토르는 레바논 이민자의 꼬치구이에서 온 타코예요.

  • ¿Pica?

    [삐까]

    매워요?

    picar는 '맵다'. Sin picante, por favor. 맵지 않게요.

  • ¿Qué me recomienda?

    [께 메 레꼬미엔다]

    뭘 추천하세요?

  • Para llevar / Para aquí

    [빠라 예바르 / 빠라 아끼]

    포장이요 / 여기서 먹을게요

  • La cuenta, por favor.

    [라 꾸엔따, 뽀르 파보르]

    계산서 주세요.

  • ¿Aceptan tarjeta?

    [아셉딴 따르헤따]

    카드 돼요?

    노점과 시장은 현금(efectivo)만 받는 곳이 많아요.

표와 숫자

  • ¿Hay descuento para estudiantes?

    [아이 데스꾸엔또 빠라 에스뚜디안떼스]

    학생 할인 있어요?

  • ¿A qué hora cierran?

    [아 께 오라 시에란]

    몇 시에 닫아요?

  • doscientos diez pesos

    [도시엔또스 디에스 뻬소스]

    210페소

    인류학박물관과 테오티우아칸 외국인 요금(2026).

  • trescientos veinte pesos

    [뜨레시엔또스 베인떼 뻬소스]

    320페소

    카사 아술 일반 요금(2026).

칠랑고의 말

멕시코시티 사람들의 입말. 알아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 ¿Qué onda?

    [께 온다]

    안녕? 어때?

    친구 사이 인사.

  • ¡Qué chido!

    [께 치도]

    멋지다! 좋다!

  • ¿Neta?

    [네따]

    진짜?

    Es neta. 진짜야.

  • ahorita

    [아오리따]

    지금 곧… 아니면 나중에

    '지금'의 지소사. 실제로는 몇 분 뒤일 수도, 영영 아닐 수도 있어요.

  • güey

    [궤이]

    야, 친구

    친구끼리 부르는 말. 낯선 사람에게는 쓰지 마세요.

멕시코 스페인어의 몇 가지 특징

스페인 스페인어와 달리 c(e, i 앞)와 z를 모두 [s]로 읽어요. 2인칭 복수는 vosotros 대신 ustedes만 쓰고요. 작게 만드는 꼬리 -ito, -ita를 아주 자주 붙여요. ahorita, cafecito, poquito처럼요. 되물을 때는 ¿Mande?가 공손하고,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Me regala…?, ¿Me da…?가 자연스러워요.

Calendario

겨울 달력

여행 가능 기간인 12월 21일부터 1월 12일까지예요. 초록 테두리가 이 책의 여덟 날이에요. 날짜가 바뀌면 월요일과 연휴를 피해 순서를 옮기세요.

월화수목금토일
12/21222324단축 운영25휴관 많음2627
28293031단축 운영1/1휴관 많음23
456레예스78910
11121314151617
이 책의 여덟 날 월요일: 국립 박물관·카사 아술 휴관 동방박사의 날

12월 24일과 31일, 25일과 1월 1일

카사 아술은 24일과 31일에 10시부터 14시까지만 열고, 25일과 1월 1일에는 쉬어요. 다른 곳도 일찍 닫거나 쉬는 경우가 많아요. 이 책이 1월 2일에 시작하는 이유예요.

12월 24일까지는 포사다

성탄 전 아흐레 동안 동네마다 노래하고 피냐타를 깨는 포사다가 열려요. 12월에 도착한다면 마지막 며칠을 볼 수 있어요.

일요일

국립(INAH) 박물관과 유적은 일요일에 멕시코 국민에게 무료라 붐벼요.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은 일요일에 누구에게나 무료예요.

Antes de ir

떠나기 전에

고도 2,240m

투손보다 1,500m 넘게 높아요. 첫날은 가볍게, 물은 자주. 숨이 차고 술이 빨리 오르는 게 정상이에요.

겨울 날씨

12월은 한 해 중 가장 건조하고, 1월 평균 최저 기온은 7°C 안팎이에요. 아침저녁은 쌀쌀하고 낮은 따뜻하니 겹쳐 입을 옷을 챙기세요. 동지 무렵 낮 길이는 11시간 정도예요.

미리 예약할 곳

카사 아술(현장 판매 없음), 루이스 바라간 자택(사전 예약 필수). 국립궁전은 개방 방식이 자주 바뀌니 가기 전날 확인하세요.

입장료 (2026년 기준, 멕시코 페소)

장소요금메모
국립인류학박물관210외국인 요금, 월요일 휴관
테오티우아칸210외국인 요금
프리다 칼로 박물관320일반 요금. 학생 60페소는 학생증 인정 여부 확인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0일요일 무료
바스콘셀로스 도서관0무료

요금은 2026년 1월 1일 기준이에요. 2027년 1월에 다시 오를 수 있어요.

Más

추가: 더 읽고 보고 들을 것

여덟 날 안에 넣지 못한 것들이에요.

책

  • Horizontal Vertigo

    Juan Villoro · 영어판 2021

    이 도시 출신 작가가 지진, 지하철, 거리 이름 같은 소재로 쓴 짧은 크로니카 모음.

  • Faces in the Crowd

    Valeria Luiselli · 2014

    멕시코시티에서 아이를 키우는 화자가 젊은 날 뉴욕에서 쫓던 멕시코 시인의 흔적을 되짚는 소설.

  • 고독의 미로

    옥타비오 파스 · 한국어 번역 있음

    멕시코 사람들의 축제와 죽음과 가면에 대한 고전 에세이.

  • 색의 나라 멕시코

    유화열 · 미술문화 · 한국어

    멕시코시티에서 7년을 산 도예가의 생활 에세이. 미술관과 시장 이야기가 많다.

영화

  • 아모레스 페로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 2000

    교차로의 사고 하나로 엮인 세 이야기.

  • 잊혀진 사람들

    루이스 부뉴엘 · 1950

    도시 변두리 아이들의 이야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이 투 마마

    알폰소 쿠아론 · 2001

    멕시코시티의 두 십대가 바다를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

  • 007 스펙터

    샘 멘데스 · 2015

    오프닝의 죽은 자의 날 퍼레이드는 영화를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이후 도시가 실제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노래

  • Cómo te voy a olvidar

    Los Ángeles Azules · 1996

    이스타팔라파 출신 쿰비아 밴드의 대표곡.

  • Pachuco

    Maldita Vecindad · 1991

    1990년대 멕시코시티 록의 상징 같은 곡.